[5분 칼럼] 분열, 다툼... 임시정부 흔들릴 때마다 그의 외교 활동은 ‘응집의 닻’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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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분 칼럼] 분열, 다툼... 임시정부 흔들릴 때마다 그의 외교 활동은 ‘응집의 닻’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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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거일의 이승만 오디세이]분열, 다툼... 임시정부 흔들릴 때마다 그의 외교 활동은 ‘응집의 닻’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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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대한민국 임시정부의 외교

대한민국 임시정부는 3·1 독립운동 직후 1919년에 상해에서 세워졌다가 1945년에 임시정부 요인들이 ‘개인 자격’으로 귀국하면서 실질적으로 해체되었다. 그렇게 26년 동안 존속하면서, 임시정부는 줄기차게 독립을 위해 노력했고 끝내 영토와 인민을 되찾아 대한민국을 세웠다. 이런 성과는 현대 세계사에 유례가 없다. 공군까지 편성한 자기 군대를 갖추고 제2차 세계대전에 당당히 참전한 폴란드 망명정부는 전쟁이 끝난 뒤 소비에트 러시아의 방해로 정부를 다시 세우는 데 실패했다.

원래 임시정부는 여럿이 난립하고 중심적 단체도 내부적으로 분열되게 마련이다. 영토도 인민도 없으니, 권력도 재력도 없어서 응집력을 갖추기 어렵다. 그러나 대한민국 임시정부는 처음부터 모든 조선 사람의 충성심을 얻었다. 그들에게 ‘상해’라는 말은 그저 도시 이름일 수 없었다.

상해로 가는 배가 떠난다

저음의 기적, 그 여운을 길게 남기고

유랑과 추방과 망명의

많은 목숨을 싣고 떠나는 배다.

1927년에 나온 박팔양의 ‘인천항’엔 그런 애틋함이 담겼다. 그래도 상해 임시정부 안엔 깊은 분열이 있었고 치열한 다툼이 이어졌다. 가장 깊은 분열은 지역적 분열이었으니, 조선조에서 평안도와 함경도 사람들이 극심한 차별을 받은 데서 유래했다. 그래서 안창호를 중심으로 한 평안도 사람들의 서북파와 이승만 주변 남쪽 사람들의 기호파 사이에 틈이 있었다. 국제공산당(코민테른)의 활동이 활발해져 공산주의자들이 늘어나자, 이념적 분열이 더 큰 문제가 되었다.

다행히, 임시정부에 응집력을 주는 요인들이 작용해서 파탄을 막았다.

근본적 요인은 3·1 독립운동의 열정이었다. 모든 조선 사람이 참여한 독립운동의 뜨거운 열정은 조선 사회를 융합시켰다. 그런 열정에서 탄생한 터라, 임시정부는 어려운 고비를 넘기곤 했다.

[김규나의 소설 같은 세상] [228] 뿌리지 않았는데 거두기를 바라는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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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은 11년 동안 소식 한 장 없었어요. 양육비도 보내지 않고 자기 아들을 똥 싸듯 내갈겨버릴 권리는 누구에게도 없는 법이지요.” 로자 아줌마는 열이 난다는 듯 부채질을 했다. “저는 운명의 희생자입니다. 아이샤를 되살려낼 수는 없지만, 죽기 전에 아들을 한번 안아보고 싶습니다. 아들에게 용서를 구하고, 저를 위해 신께 기도해달라고 부탁하고 싶습니다.” 아버지인 척하면서 요구사항까지 들고나오는 그가 나는 슬슬 지겨워지기 시작했다.

-에밀 아자르 ‘자기 앞의 생’ 중에서

아들의 사망 보상금을 딸과 나누지 않겠다는 팔순의 노파가 화제다. 남편이 죽자 어린 자식들을 시댁에 맡기고 재가한 뒤 54년간 연락 없이 살았어도 상속권은 친모에게 있다. 바다에서 시신도 찾지 못한 아들, 엄마 없이 고생했을 딸을 생각하면 마음 아플 것 같은데 배 아파 낳은 자식도 돌아서면 남이다. 재혼해서 얻은 자식이 있는 걸까? 그들을 향한 또 다른 모정일까?

상속 권리만 주장하는 냉정한 모성과 달리 자식 사랑과 양육 의무에 눈이 멀어 부정을 저지르는 부모도 있다. 자녀에게 A+학점을 주는 교수 아빠, 입시 비리로 수감 중인 교수 엄마, 조력한 혐의로 재판 중인 전 법무부 장관 아빠, 자녀를 특혜 채용하고 부정 승진시킨 중앙선거관리위원회 임원들.

[김준의 맛과 섬] [152] 통영 청각초무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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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청각을 만났던 곳은 고향 마을 장독대다. 그 옆에는 토란대와 참깨가 자리를 잡았다. 그즈음 앞마당에는 마늘과 고추가 가을을 재촉하고 있었다. 이렇게 할머니는 추워지면 먹을 거리를 늦여름에 챙겼다. 다른 재료는 모두 논과 밭에서 쉬 볼 수 있었지만 청각만큼은 그 실체를 알지 못했다. 아니 어렸을 때는 청각마저 밭에서 뜯는 채소로 알았다. 그런 청각을 초무침으로 만났다. 경남 통영의 벗이자 통영음식문화 연구자가 운영하는 식당에서 지난여름에 맛보았다. 그 뒤로 초도, 거문도, 안도 등 전남 여수 섬에서 냉국으로, 경북 포항 구룡포에서는 고추장을 더한 붉은 청각냉국을 만났다. 청각은 통영뿐만 아니라 포항, 거제, 여수 지역에서 여름철에 냉국과 초무침으로 음식을 만들어 먹곤 했다.

청각은 갯바위나 돌에 붙어서, 봄에 자라 여름에 많이 채취한다. 대부분 말려서 겨울 김장철에 사용하지만 양식이 이루어지면서 다양한 형태로 이용되고 있다. 자산어보에 ‘맛이 담백해서 김치 맛을 돋운다’고 했다. 김치가 쉬 쉬지 않도록 젖산 발효를 억제하는 역할을 한다. 예로부터 김치를 담글 때 더하는 재료로 이용했다. 막 채취한 싱싱한 청각은 초무침으로 만들어 먹기도 한다. 좋은 청각은 줄기가 통통하고 색깔이 짙고 윤기가 흐르는 것이 좋다. 이런 청각을 볕이 좋은 날 하루에 말려야 향이 좋다.

생청각이 없을 때는 마른 청각을 물에 불려서 사용하기도 한다. 청각을 바락바락 주물러 씻은 다음 거친 뿌리를 제거하고 살짝 데친다. 청각 자체가 수분을 많이 품고 있어 반드시 물을 넣지 않고 데쳐야 한다. 데친 청각은 물기를 완전히 제거해야 맛이 있다. 여기에 양파, 파, 고추, 깨소금, 설탕, 다진 마늘, 젓갈, 된장 등 갖은 양념을 더한 새콤달콤한 청각초무침이 여름에 좋다. 통영에서는 청각초무침에 홍합을 볶아 넣는 것이 특징이다. 청각냉국은 식초를 넣은 물에 설탕과 소금을 녹인 다음 생강즙을 넣어 데친 청각에 부어 차게 먹으면 좋다. 시원한 청각냉국이나 청각초무침으로 더위를 날려보자.

[김철중의 아웃룩]환자 안전사고 한 해 1만4000여건

#안구 표면 각막에 염증이 심하게 생긴 각막궤양으로 입원한 80대 환자 김모씨. 그는 새벽 2시경 병실 침대에서 자다가 깨서 화장실을 가려고 침대 난간을 넘다가 바닥으로 떨어졌다. 환자 옆을 지키던 보호자는 잠이 든 상태였다. 김씨는 바닥에 머리를 부딪히고 실신했다. 이후 촬영한 뇌CT상 두개골과 뇌경막 사이에 출혈이 생겼다. 머리에 외상성 손상이 왔을 때 발생하는 출혈이다. 김씨는 두개골 안쪽 혈액 덩어리를 제거하는 응급 수술을 받았다.

#오른쪽 종아리 정맥이 울퉁불퉁하게 튀어나와 병원을 찾은 이모씨. 그는 종아리 정맥 피가 심장 쪽으로 올라가는 위쪽의 사타구니 정맥에서 판막 부전으로 혈류가 아래 종아리 쪽으로 역류되어 생기는 하지 정맥류라는 진단을 받았다. 이 경우 치료는 역류의 진원지인 사타구니 정맥을 묶어 버리는 결찰술을 하게 된다.

하지만 이씨는 멀쩡한 왼쪽 사타구니 정맥 결찰술을 받았다. 이 시술 위치가 환자가 엎드린 자세로 하는 게 편한 상태이기에 시술 준비 의료진이 환자를 엎드린 상태로 해놓고 소독포를 덮고 시술 부위만 드러나게 해놨다. 그다음에 처치실에 들어온 시술 의사가 환자가 엎드려서 좌우가 바뀐 걸 모르고 왼쪽 사타구니에 메스를 갖다 댄 것이다.

[朝鮮칼럼] 캠프 데이비드, 자유민주 진영 떠받칠 두 번째 기둥 세웠다

1978년 이집트와 이스라엘 간의 30년 무력 대치를 종식시키고 반세기 중동 평화의 길을 연 캠프 데이비드에서 또 하나 화합과 협력의 기적이 창출될지 세계가 주목하고 있다. 1990년대 출범 이래 불안스러운 한일 관계 때문에 진통을 거듭하며 간신히 명맥만 유지하던 한·미·일 3자 안보 협력이 지난 주말 캠프 데이비드 3국 정상회담을 통해 아·태 지역 최강의 안보협력체로 재탄생했다. 이는 최고위급 회담 정례화와 외교·안보 현안 공동 보조, 정례적 합동 군사훈련과 미사일 방어 협력 등 안보협력체 기능에 더해 첨단 분야 경제안보 동맹의 성격까지 망라된 강력한 전방위 3자 안보협력체의 출범을 의미한다.

“미국 외교의 꿈이 실현되었다”는 뉴욕타임스 평가처럼, 동아시아에서 한일 갈등을 극복하고 유럽의 NATO에 상응하는 한·미·일 안보협력체를 구축하는 것은 미국 외교의 오랜 꿈이었다. 이는 또한 한미 동맹 외에는 딱히 동질적 소속 그룹이 없는 외로운 외교적 입지 때문에 빈번히 적대적 주변국의 압박과 위협에 직면하곤 했던 한국 외교의 오랜 소망이기도 했다. 3자 안보협력체의 출범은 동아시아 패권 장악을 노리는 거대 중국의 위협에 저항하는 자유민주 진영 연합 체제의 탄생을 의미한다. 특히 한국에는 과거의 대중국 굴종 외교에 대한 결별 선언인 동시에 반주권적 3불 약속 폐기 개시의 신호탄이기도 하다.

그런 상황 전개에 대해 중국 외교부 대변인은 “강한 불만과 결연한 반대”를 표명했지만, 이는 중국의 패권주의적 팽창 정책과 오만한 외교 행태가 초래한 필연적 귀결일 뿐이다. ‘구소련 제국의 영광 회복’을 추구하는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이 유럽의 반러시아 단합을 초래했듯이, ‘중화민족의 위대한 부흥’을 기치로 남중국해, 대만, 한반도 장악을 넘보는 중국의 외교적, 군사적 위협은 지리멸렬했던 동아시아의 자유민주 진영을 결집시키는 원동력이 되었다. NATO의 반중국 결집에 이은 동아시아 안보협력체의 출범은 이미 성공 가능성이 희박해진 중화 제국의 패권 가도에 새로운 충격파가 될 전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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