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전 70주년, 평화통일을 이룰 지도자를 기다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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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전 70주년, 평화통일을 이룰 지도자를 기다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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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5전쟁 정전 70주년
 
2023년 7월 27일은 6.25전쟁 정전 70주년이 되는 날이다. 전선에서 총소리가 멈춘 지 70년이 지났으나 우리나라는 아직 정전(휴전) 중인 상태다. 유사 이래 이렇게 긴 정전 상태인 경우는 동서고금을 통틀어 6.25전쟁이 최장 기록이 아닐까 싶다. 
 
"1953년 7월 27일 오전 10시 정각, 동쪽 출입구로 유엔군 측 수석대표 해리슨과 실무자가 판문점 정전회담장으로 입장했다. 그와 동시에 서쪽 입구로 공산군 측 수석대표 남일과 실무자가 들어와 판문점 정전회담장에 착석했다. 양측 대표는 서로 목례도, 악수도 없었다. 시종 냉랭한 분위기였다. 정전회담장에는 북쪽으로 세 개의 탁자를 나란히 배치해 두었다. 가운데 탁자를 완충 경계지역으로 양쪽 탁자에 앉은 유엔군 측과 공산군 측 대표들은 곧 무표정한 얼굴로 정본 9통, 부본 9통의 정전협정문에 부지런히 서명을 했다. 서명을 마치자 양측 선임 참모장교가 그것을 상대편에 건넸다.
 
이날 유엔군 측 해리슨과 공산군 측 남일은 서른여섯 번 서명했다. 정전협정 조인이 계속되고 있는 동안에도 유엔군 전폭기는 하늘에서 무력시위라도 하듯, 정전회담장 바로 근처 공산군 진지에 폭탄을 쏟았다. 그런 가운데 양측 대표는 10여 분 만에 서명을 끝냈다.
 
그런 뒤 그들은 정전 협정서를 교환하고 아무런 인사도 없이 곧장 회담장을 빠져나갔다. 그때가 1953년 7월 27일 오전 10시 12분이었다. 이날 정전협정 조인식은 회담장 분위기조차 글자 그대로 '정전'이었지 결코 '평화'가 아니었다. 한국전쟁(6.25전쟁) 정전협정은 25개월 만에, 모두 765차례 회담 끝에 이루어졌다.
 
이날 판문점 정전협정 조인식장에는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사람은 단 한 사람도 없었다. 심지어 기자단도 유엔군 측 기자는 1백 명 정도였고, 일본인 기자도 10명이었다. 그런데 한국인 기자는 단 두 명뿐이었다. 대한민국의 운명은 한국인 참여 없이 결정되는 어처구니없는, 비극의 현장이었다.
 
이날 정전협정 서명 이후에도 전투는 계속됐다. 정전협정문에는 서명 시점에서 12시간이 지난 뒤부터 전투 행위를 중지하도록 돼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날도 유엔군 폭격기들은 북한의 비행장과 철로들을 폭격했고, 유엔군 해군 전함들은 동해 바다에서 원산항 쪽으로 함포사격을 맹렬히 실시했다. 정전 직전 최후 순간까지도 서로가 한 하늘 아래서 살 수 없는 원수처럼 상대방에게 깊은 상처를 주었다.
 
전쟁에서 교전국 간 페어플레이나 자비를 바랄 순 없다. 하지만 한국전쟁은 그 시작인 북한의 기습남침에서부터 유엔군의 마지막 북한 지역 폭격까지 이 나라 백성들의 생명이나 인권은 그들의 안중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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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3년 7월 27일 22시, 그제야 155마일 휴전선에 비로소 총성이 멎었다. 3년 1개월 남짓 지루하게 계속된 6.25전쟁은 승자도, 패자도 없는(양측이 승자라고 서로 우기는) '끝나지 않은 전쟁'으로 일단 그 막을 내렸다.

이 기간 동안 양측 사상자는 민간인 포함 약 500만 명, 그리고 1천만 명의 이산가족을 만들었다. 그리고 한반도는 전쟁 전 일직선 38도선 대신 전쟁 후 구불구불한 곡선의 군사분계선으로, 또 다른 단장의, 원한과 통곡의 휴전선(DMZ)을 남겼다.
 
이와 반면 미국은 6.25전쟁으로 제2차 세계대전 후 침체기의 경제를 부흥시킴과 아울러 서방세계 최강국으로 부상하였다. 이웃 일본은 한국전쟁을 '신이 내린 선물'이라고 할 만큼 태평양전쟁 패전의 잿더미를 재건시키는 원동력이 됐다. 또한 북한은 김일성 유일체제를 더욱 공고히 굳혔고, 남한 역시 흔들리던 이승만 정권의 기반을 튼튼히 하는 데 큰 몫을 했다.

이와 아울러 국제무기상들은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일본의 조기 항복으로 산더미처럼 쌓인 무기 재고 때문에 속을 썩였다. 그러다가 6,25전쟁이 발발하자 무기 판매의 대목으로 재고정리를 말끔히 하면서 그들의 배를 한껏 두들겼다. 어쩌면 6.25전쟁이 3년이나 끌고 정전협정으로 끝난 것은 국제 무기상들의 농간이었을지도. 
 
한국전쟁은 결과적으로 남과 북의 힘없는, 불쌍한 어리석은 백성들만 소련제, 미국제 무기를 들고 한 핏줄, 내 형제들을 한 하늘 아래 살 수 없는 원수처럼 서로 무참히 죽이는 강대국의 땅따먹기 노름과 국제 무기상들의 장사노름에 놀아난 가엾고도 불쌍한 어릿광대 꼴이 됐다. 하지만 한국전쟁은 완전히 끝난 게 아니라 잠시 쉬는 정전협정으로 한반도는 어정쩡한 화약고로 계속 국제 무기상들의 좋은 먹잇감으로 남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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