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대 최고 '한국축구 유럽파', 주어진 숙제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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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대 최고 '한국축구 유럽파', 주어진 숙제들

대박기자 0 290 0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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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은 전 세계 현대 축구계에서 가장 거대한 시장 규모와 수준높은 리그들을 보유한 '주류' 지역으로 꼽힌다. 유럽 리그는 전 세계 축구선수들에게는 꿈의 무대와도 같다. 특히 유럽 5대리그로 꼽히는 빅리그나 유럽클럽대항전에 나설 수 있는 클럽에서 뛴다는 것은, 그 해당 선수는 물론 자국축구의 위상을 높이는 하나의 지표가 되었다.
 
한국축구도 과거부터 현재까지 수많은 선수들이 유럽의 문을 노크했다. 한국축구 최초의 유럽파인 '차붐' 차범근은 1970~1980년대 세계 최고의 리그로 꼽히던 서독 분데스리가를 평정하며 지금까지 유럽에서 인정받는 '전설'의 반열에 올랐다. 그 뒤를 이어 1980년대 허정무-김진국 1990년대에는 김주성, 서정원, 노정윤, 안정환 등이 비록 소수였지만 유럽파의 명맥을 이어갔다. 하지만 이때만 해도 한국 축구의 위상과 인지도가 낮던 시절이고, 해외진출 시스템과 규정의 미비로 한국 선수들이 체계적으로 유럽을 꿈꾸는 자체가 쉽지 않았다.
 
본격적으로 유럽에 한국선수들이 활발하게 진출하기 시작한 것은 2002년 한일월드컵 이후부터다. 한국축구는 아시아 최초로 월드컵 4강이라는 신화를 달성하며 당시 대표팀 멤버들이 유럽 여러 명문구단들의 주목을 받았다.
 
이 시기에 박지성-이영표-송종국-이천수-이을용-차두리-김남일 등이 잇달아 유럽으로 진출하며 해외파의 숫자가 크게 증가했다. 월드컵과 별개로 이미 유럽에 진출해있던 설기현, K리그에서 활약을 통하여 빅리그까지 직행한 이동국, 김두현, 조원희같은 케이스도 나왔다. 이들은 흔히 '2002 한일월드컵 세대(1970년대 중반-1980년대 초반생)'로 분류된다.
 
특히 당대의 빅클럽인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에서 활약한 '해버지' 박지성의 성공 신화는 이후 한국축구에서 해외축구 진출붐과 대중적 인기를 크게 높이는 기폭제가 됐다. 한일월드컵 이전까지만 해도 무명 선수에 가까웠던 박지성은 국가대표팀(한일월드컵)에서의 활약, 유럽의 중소리그(네덜란드 PSV 아인트호벤)를 거쳐 빅리그-빅클럽(잉글랜드) 이적이라는 당시 한국 선수들의 유럽 진출 성공루트의 모범을 가장 먼저 제시한 인물이기도 하다.
 
2010년대 이후로 '런던올림픽과 유럽 조기유학 세대(1980년대 중반-2000년대 초반생)'가 한일월드컵 세대의 바통을 이었다. 이 시기의 유럽 진출은 다시 크게 두 부류로 나뉜다. 기성용, 이청용, 박주영, 구자철, 지동원, 윤석영, 김보경, 홍정호, 김진수 등 K리그와 대표팀에서 활약을 인정받아 유럽 5대리그나 명문클럽으로 바로 직행하는 사례가 크게 늘어났다. 김보경처럼 2부리그에서 팀을 승격시켜 빅리거가 되거나, 구자철-지동원처럼 임대를 통하여 출장기회를 확보하여 살아남는 루트도 새롭게 등장했다.
 
또한 1990년대생 이후로는 손흥민을 필두로 이강인, 황희찬, 정우영, 홍현석, 이승우, 백승호처럼 아예 10대 시절부터 유럽팀에 조기 입단하여 현지의 유스와 하부리그 시스템을 거쳐 프로 1군 데뷔까지 성공한 사례들이 대거 늘어났다. 손흥민과 이강인은 이러한 '조기유학'의 대표적인 성공사례들로 꼽힌다.

손흥민은 2021-2022시즌 아시아 선수 최초의 프리미어리그 득점왕 등 화려한 경력을 쌓으며 차범근-박지성을 잇는 한국축구 역대 최고의 유럽파 선수로 평가받고 있다. 이강인은 한국인 선수 최초의 FIFA 주관대회 골든볼(2019년 폴란드 U-20 월드컵) 수상, 스페인 라 리가에서 성공한 최초의 한국 선수로 자리잡으며 한국축구의 역사를 이끌어나가고 있다.
 
전환점 맞은 한국축구 유럽파의 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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