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신인가 충신인가, 달리 평가받는 시대의 풍운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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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신인가 충신인가, 달리 평가받는 시대의 풍운아

여행매거진 0 296 0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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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북 남원에 있는 광한루원(廣寒樓苑)은 판소리계 소설 춘향전의 무대로 잘 알려져있다. 이곳은 조선 시대 남원부 관아의 누각(樓閣)이었으나, 평민들은 이곳을 신분의 귀천과 차별이 없는, 즉 평등 세상을 지향하는 공간이자 정신적 터전으로 삼아 왔다.
 
광한루의 연못가에는 우람한 왕버드나무가 줄지어 숲을 이루어 푸르르다. 이 지역에는 예로부터 남원 고을 출신인 류자광(柳子光, 1439~1512)을 빗대어 '남쪽 들녘에 버드나무가 스스로 빛이 난다'는 의미의 '남원(南原) 류자광(柳自光)'이라는 어구가 전승되었다. '남원 류자광'은 특정 인물의 이름이면서, 한편 남원 광한루의 버드나무가 우거진 풍경을 뜻하는 중의적 의미를 지닌다.
 
지난 19일, 장맛비가 잠시 멈추고 햇살이 비추는 날씨에 류자광의 유적지와 설화를 찾는 역사 여행을 했다. 류요선(남원시 이백면)씨가 이 여행의 길 안내를 해 주었다. 이날 광한루를 출발하여 류자광의 출생지 누른대 마을을 방문했다.

류자광, 왕의 정예 친위병에 임명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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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자광의 공덕비 옆에는 강정(江亭) 정자가 요천을 바라보고 있었다. 류자광이 요천에서 은어를 잡았다는 장소를 찾아보고 냇가 건너 류자광이 공부했다는 서당골을 바라보았다.
 
류자광은 조선 시대 세조(世祖)부터 중종(中宗)까지 다섯 임금의 재위 기간에 공신으로 두 번 책봉되었고 무령군(武靈君)의 칭호까지 받은 문무를 겸비한 관료였다. 무령군이라는 군호는 전남 영광 지역의 옛 지명인 무령(武靈)과 관련이 있는데, 글자의 의미는'무예 능력이 신령하다'는 의미가 된다.
 
류자광은 경복궁의 건춘문을 지키는 비정규직에 해당하는 갑사(甲士)로 출발하였다. 1467년(세조 13에) 중앙집권적 지방통치의 강화에 불만을 품은 이시애(李施愛,  ? ~ 1467)가 함경도에서 난을 일으켰다. 세조는 류자광을 왕의 정예 친위병인 겸사복(兼司僕)에 임명하여 그가 능력을 발휘할 기회를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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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반 가문에서 서얼로 태어난 류자광은 신분적 한계를 자기 능력과 포부로 극복한 인물이다. 그러나 세조는 대대로 높은 관직에 올랐던 그의 가문 배경을 참작하여 류자광의 자천(自薦)을 신뢰하였고, 과거를 거치지 않고도 등용한 것으로 보인다. 류자광은 대사헌(大司憲) 등을 역임한 오성군(筽城君) 유자환(柳子煥, ?~1467)의 서제(庶第) 즉 이복동생이었으니, 적자인 형이 서자 동생의 후원 역할을 했음을 짐작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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