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과 김환기 아내로만 기억해서는 안 될 '김향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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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과 김환기 아내로만 기억해서는 안 될 '김향안'

여행매거진 0 297 0 0
1974년 7월 25일. 갑작스레 남편이 떠났다. 병원 침상에서였다. 처음 있는 일이 아니었다. 30여 년 전에도 그녀는 남편의 병원 침상을 지키다 첫 남편을 먼저 보내야 했었다. 홀로 남은 30년은 먼저 보낸 두 사람을 전심을 다해 기리며 살아냈다. 천재 시인 이상과 천재 화가 김환기의 특이한 연결점. 두 분의 아내였던 고 김향안 여사의 이야기이다. 

여름 열기보다 강렬했던 김향안의 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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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향안이라는 이름에 다가서려 한 날들마다 하늘이 짙고 날이 뜨거웠다. 그분 생의 온도 같았다. 시인의 아내이자 화가의 아내라는 명칭 안에만 가둘 수 없는 분, 김향안은 본인 역시 여러 권의 수필집과 소설을 쓴 작가이자 화가였다.

화실 창으로 들어오는 햇볕이 아까워 그림을 그리지 않을 수 없었다던 그 작업실은 오늘도 한여름 볕을 가득 받고 있었다. 부부가 나란히 누운 자리를 찾았을 때도 그랬다. 

유교의 전통도, 일제의 폭압도, 한국전의 화염도, 낯선 땅에서의 고단함도 김향안을 멈춰세우지 못했다. 그 동력이 무엇이었을까. 길을 걸으면서도, 묘소를 찾는 동안에도 내내 궁금했다.

변동림으로 태어나 김향안으로 활동했고 김동림으로 묻힌 여성. 두 예술가 남편으로부터 뜨거운 사랑을 받았던 신여성. 그들의 천재성을 꿰고 이끌어주었던 당찬 여성. 3개 국어에 능통해 이화여대와 소르본에서 수학할 정도로 영특했고, 현실에 충실했고, 예술가인 남편과 그의 작품을 영민하게 관리할 줄 알았던 여성. 김환기가 우주를 그려내었다면 김향안은 우주의 에너지를 품고 있었던 듯싶다. 

"같이 멀리 달아날까? 아니면 같이 죽을까?"

드라마 대사 같은 구애였다. 이화여대생 변동림이었던 시절, 시인 이상의 강렬한 프러포즈에 그녀는 응했지만 결혼 4개월 만에 남편 이상은 혼자 멀리 떠나 혼자 죽었다. 일본 동경, 쓰러진 그에게 급히 달려가 병상을 지켰으나 어린 신부는 끝내 혼자 남겨졌다.  수년 후, 이번에는 연모의 마음을 편지로 써 보내오는 키 큰 화가가 나타났다. 김환기였다. 한 세기 전이었으니, 당시에 딸 셋을 둔 이혼남에게 젊은 딸을 시집 보낼 부모는 없었다. 매일매일 그저 편지로 마음을 전하는 김환기에게 변동림은 "자녀가 셋이든, 열이든, 거둬 키우겠다"라는 당찬 응답을 보냈다.

결혼을 반대하는 집도, 변동림이라는 이름도 내려놓았다. 대신 남편의 성과 남편의 아호를 달라 하여 가졌다. 그렇게 변동림은 김향안이 되었다. 두 편의 러브스토리를 묶으니 어떤 영화보다도 더 강렬한 로맨스 영화같다. 

부부의 작업실을 찾아 가는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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