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묘에 오니 유교도 '종교'임을 비로소 알겠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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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묘에 오니 유교도 '종교'임을 비로소 알겠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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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종로구 훈정동, 종묘(宗廟)를 가기 전엔 유교가 종교라는데 선뜻 동의하지 못했다. 종묘를 다녀온 후엔 유교가 종교라는데 격하게 수긍했다. 종묘는 조선시대의 왕과 왕비는 물론 실제로 왕위(王位)에 오르지는 않았으나 죽고 나서 왕의 칭호를 올려받은 왕[추존왕(追尊王)]과 그 비의 신주를 모시고 제사를 지냈던 왕실의 사당이다.

태조(太祖) 이성계(李成桂, 재위 1392∼1398)는 1394년(태조 3) 새 도읍지인 한양으로 천도했다. 유교 이념에 따라 궁궐인 경복궁을 중심으로 왼쪽인 동쪽에 종묘를, 오른쪽인 서쪽에 사직(社稷)을 세웠다.
 
종묘 중심 건물은 정전(正殿)과 영녕전(永寧殿)이다. 태조 당시는 정전뿐이었다. 영녕전은 정전에 모시지 않은 왕과 왕비의 신위를 모시는 별묘(別廟)로, 세종 때 세워졌다.
 
건립 당시 정전은 7칸이었다. 명종대에 11칸으로 늘어났다. 임진왜란으로 불탄 후 광해군이 재건하였다. 영조 2년(1726)에 4칸, 헌종 2년(1836)에 4칸을 더하여 지금은 19실(室)이다. 영녕전은 6칸으로 시작하였다. 헌종 2년 정전 증축 때 현재의 규모인 16실(室)이 되었다. 상세한 내용은 현장에서 문화재해설사의 생생한 설명을 듣기 권한다.

장엄함, 그리고 엄숙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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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일, 또 종묘를 찾았다. 처음엔 의무감 같은 것이었다. 국보에, 보물에, 사적에, 세계유산에 온갖 타이틀을 거머쥔 종묘를 한 번도 안 가본다면 이 강토의 후손된 도리가 아니지 않은가 하는 뭐 그런 거랄까.
 
처음 대면한, 정전은 장엄하였다. 동서 107m 길이의 목조 기와집이 주는 위엄은 충격이었다. 그 첫 경험이 강렬하여 자주 찾았다. 해가 뜰 때, 해가 질 때, 정오의 햇살 아래서 느낌은 각기 달랐다. 압권은 눈 덮인 모습이었다.
 
각기 다른 풍광 속에서도 언제나 변하지 않는 것이 있었는데, 그건 조용함과 엄숙함이었다. 그렇게 조용하고 엄숙한 공간을 만들어 낸 조선 오백 년의 정신이 경이로웠다.
 
지금은 보수공사 중이다. 대략 내년 말쯤이야 새로 단장한 모습을 볼 수 있다. 정전과 다르면서도 비슷한 영녕전으로 아쉬움을 달랠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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