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 이름보다 트로이 유적지로 유명한 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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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 이름보다 트로이 유적지로 유명한 곳

여행매거진 0 902 0 0
며칠 간의 이스탄불 일정을 마치고 버스 터미널로 향했습니다. 튀르키예는 넓은 국토를 주로 버스를 통해 연결하고 있습니다. 철도 교통은 제한적인 편이죠. 저도 버스를 타고 다음 목적지로 향했습니다.

잠시 이즈니크에 들렀다가 차낙칼레(Canakkale)로 향했습니다. 중간에 예약한 버스편이 취소되는 해프닝도 있었지만, 큰 문제는 없이 일정을 소화했습니다. 큰 버스와 작은 미니버스를 갈아타며 작은 마을과 도시를 경유하는 여행이 생각보다는 재미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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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낙칼레라는 도시의 이름은 그리 유명하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차낙칼레에서 미니버스를 타고 남쪽으로 한 시간여를 달리면 나오는 유적의 이름은 너무도 유명하죠. 이곳에 고대 그리스의 도시, 트로이의 유적이 있습니다.
 
트로이는 무엇보다 트로이 목마와 그 목마가 사용된 트로이 전쟁으로 알려져 있죠. 트로이의 왕자 파리스가 스파르타의 왕자 헬레나를 납치한 사건에서부터 시작된 전쟁이었죠. 10여 년간 이어진 전쟁 끝에 그리스는 목마를 남겨두고 퇴각합니다. 트로이는 이 목마를 승전의 상징으로 여기고 성 안으로 들였지만, 목마 안에 숨어있던 그리스군이 습격해 트로이가 멸망했다는 이야기입니다.
 
이 전쟁은 그리스 신화에서도 가장 중요한 부분이고, 호메로스가 지은 <일리아드>의 주제이기도 합니다. 전쟁에서 패배하고 멸망한 트로이의 후예가 로마를 건설했다는 설화도 있죠. 사실 트로이의 후예가 등장하는 건국 신화는 유럽 곳곳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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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 기간 트로이라는 도시는 그 실체가 불분명했습니다. 트로이가 어디에 있었던 도시인지도 알 수 없었죠. 그러니 당연히 트로이 전쟁이 실제 있었던 역사인지, 신화에 불과한지도 확인할 수 없었습니다.
 
트로이의 실체가 확인된 것은 1871년 하인리히 슐리만(Heinrich Schliemann)에 의해서였습니다. 프랭크 캘버트(Frank Calvert)가 이 지역이 트로이일 가능성이 높다고 지목하자, 그와 함께 발굴을 시작한 것입니다. 그렇게 오랜 기간 땅 속에 묻혀 있던 트로이가 세상에 모습을 보였습니다.
 
하지만 슐리만은 훈련받은 고고학자는 아니었습니다. 단순히 오래된 물건을 좋아하는 호고주의(好古主義)에 가까운 사람이었죠. 당연히 체계적인 발굴이 이루어졌을 리 없습니다. 트로이 유적 안에 있던 여러 유물이 기록도 없이 발굴되고 훼손되었습니다.
 
특히 슐리만은 발굴 과정에서 유물을 조작하려 한 혐의도 짙습니다. 자신이 트로이라고 생각한 지층을 발굴하기 위해 다른 층을 파괴하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슐리만이 지목한 지층은 그리스 신화 속 트로이가 아니었죠. 오히려 그가 파괴한 지층이 그리스 신화 속 트로이로 드러나면서 후일 유적의 실체 규명에 여러 문제가 발생하기도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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