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 한국영화엔 최민식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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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 한국영화엔 최민식이 있었다

sk연예기자 0 727 0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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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쉬리>로 한국형 블록버스터 시대를 열었다. <올드보이>도 최초일 것이다. 칸 국제영화제를 거쳐 한국영화를 전 세계 관객들에게 알렸다. 앞서 임권택 감독의 <취화선>의 장승업으로 레드카펫을 밟았던 바로 그 칸이었다. 박찬욱의 복수 3부작의 서막을 연 오대수는 '욘사마'와 함께 그 시절 1세대 한류의 대표 캐릭터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이후 <친절한 금자씨>에선 유괴범, <악마를 보았다>에선 연쇄 살인마를 연기했다.
 
2010년대 이순신을 스크린으로 소환했고, 역대 흥행 1위 기록은 언제 깨질지 요원해 보인다. <명량>의 관객 수는 1761만 명이다. <범죄와의 전쟁>은 "살아있네"라는 유행어와 숱한 패러디를 양산했다. 그리고 OTT의 시대, 디즈니플러스의 한국 콘텐츠 최대 화제작 <카지노>로 건재를 과시했다.
 
그렇다. 배우의 배우 최민식이다. 한국영화의 중심에 그가 있었다. 한국영화 르네상스를 이끈 주역 중 하나이자 위기의 순간에 마이크를 잡고 앞장을 섰던 것도 최민식이었다. 50대를 넘어서면서는 한 눈 팔지 않고 연기에만 매진했다. 데뷔작 1989년 드라마 <야망의 세월> 속 '꾸숑'으로 요즘 아이돌급 인기를 얻고, 1990년대 캐릭터를 확 바꾼 <서울의 달> 춘식이로 사랑받았던 그는 글로벌 OTT TV쇼로 복귀하기 전까지 25년 간 영화에만 몰두했다.
 
지난달 29일 개막한 제27회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BIFAN)가 바로 그 최민식 특별전을 마련했다. 제목은 '최민식을 보았다'. BIFAN이 정우성·전도연·김혜수·설경구에 이어 5번째로 준비한 배우 특별전이다.
 
한국영화가 위기다. 최민식이 직접 골랐다는 영화들의 면면을 확인하며 부지불식 한국영화의 결정적 장면들에 최민식이 존재했다는 자각에 다다랐다. 중흥과 영광, 위기를 돌고 돌아온, 이제는 글로벌 OTT 시대와 극장의 위기를 맞은 한국영화를 꿋꿋이 지켜왔던 최민식. 문득 혈기왕성했던 40대 최민식의 한 장면이 떠올랐다. 
 
영광과 위기
 
"이제 더 이상 이 훈장의 의미를 찾을 수 없습니다."
 
2006년 2월, 최민식의 카랑카랑한 음성이 광화문에 울러 퍼졌다. 영상을 통해 전국민에게 전달됐다. 당시 최민식은 <올드보이>를 통해 문화관광부로부터 받은 옥관문화훈장을 반납하겠다고 나섰다. 언론이 주목했다. 스크린쿼터 축소를 반대하고 문화주권을 수호하고자 하는 투쟁의 일환이었다.
 
시대가 그랬다. 전 영화계가 나섰다. 최민식과 송강호, 안성기 등을 비롯한 충무로 배우들이 동참했다. 이들의 스크린 축소 반대 투쟁은 한미FTA 반대 및 농민들의 쌀투쟁과 함께 시대의화두이자 거대한 흐름이라 할만 했다. 이후 정부와 정치인들의 선택과는 별개로 영화인들의 문화주권 수호 투쟁은 한국영화 산업의 토대를 지탱하는 구심점이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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