혐한의 표적 된 '자이니치 코리안'의 비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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혐한의 표적 된 '자이니치 코리안'의 비극

sk연예기자 0 921 0 0
"인간성이란 인간끼리 서로 다른 개성을 지닌 인간임을 인정하고 만나는 것이다."

<악의 평범성>을 이야기했던 한나 아렌트가 '인간과 동물의 차이'를 설명하며 내린 정의다. 하지만 나와 다르다는 이유로 인간이 인간을 차별하고 혐오하는 악습은, 현대 사회에서도 여전히 사라지지 않고 있다.

재일 한국인의 가슴아픈 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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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 16일 방송된 tvN <벌거벗은 세계사> 99회는 '일본 우익의 먹잇감이 된 자이니치 코리안' 편을 통하여 일본에 거주 중인 재일 한국인의 가슴아픈 역사와 일본 우익들의 만행을 조명했다. 동아시아와 일본사 전문가인 박삼헌 건국대학교 일어교육과 교수가 이날의 강연자로 나섰다.
 
자이니치 코리안이라 불리는 재일교포는 현재 일본에 약 44만 명 정도가 거주하고 있다. 소수세력인 자이니치들은 일본에서 종종 차별과 폭언, 살해협박에 노출되어 고통을 받는 사례들이 발생하고 있다.
 
일본의 극우파는 우익중에서도 폭력적인 성향을 드러내며 천황을 위시하고 일제강점기 당시 침략을 부정하고 찬양하는 무리들이다. 이런 우익세력들은 역사적으로 100년에 걸친 시간동안 일본 내 자이니치들을 정치적 먹잇감으로 삼아 탄압하고 지금까지도 혐오과 폭력을 부추기고 있다.
 
자이니치 코리안의 역사는 20세기 초반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1905년 러일전쟁 이후 부산과 일본 시모노세키를 잇는 관부 연락선이 개통되면서 당시 많은 조선인들이 일자리를 찾아 일본으로 건너갔다. 이들이 대도시를 중심으로 일본 전역에 흩어지며 정착하게 된 것이 오늘날 자이니치 코리안의 시초다.
 
당시 일본에 건너간 대부분의 조선인들은 일본어로 '3K'(힘들고, 더럽고, 위험한)로 불리며, 최하층 노동자 대우를 받았다. 일본은 제국주의적 야심을 구현하기 위한 전초 작업으로 도시 곳곳에 발전소와 철도공사를 진행했는데 위험하고 힘든 직업에 일본인 대신 조선인 노동자들이 투입됐다. 
 
1910년 한일강제병합으로 국권을 상실하면서 삶의 터전을 잃은 조선인 노동자들이 일본으로 건너오는 숫자는 계속 증가했다. 조선인들은 가뜩이나 최악의 노동환경 속에서 일본 내에서는 일본인도 외국인도 아닌 '2등 국민'을 취급을 받으며, 임금이나 복지 등에서 차별 대우를 받아야 했다.
 
당시 일본에 살던 조선인들은 먹을 것이 부족하여 일본인이 버리거나 가축사료로 이용하던 동물의 내장을 가져다가 먹었는데, 그게 바로 지금의 곱창 요리다. 일본의 곱창요리는 오사카 방언으로 버리는 것을 의미하는 호루몬(放る物)에서 유래했다는 것이 정설이다.
 
일본의 최하층민으로 살아야 했던 조선인들은 일본이 국가적 재난이나 위기에 처할 때마다 희생양으로 이용당하기 일쑤였다. 1923년 9월 간토 대지진은 사망 및 실종만 10만 5천여명, 부상자가 10만여명 이상이 발생한 일본 역사상 최악의 지진중 하나로 꼽힌다. 당시 일본의 피해규모는 국민총생산의 약 1/3에 이르렀다.
 
사회가 불안해지고 불만이 높아지면 사람들의 시선을 다른 곳으로 돌릴 대상이 필요했는데, 당시 일본 사회에서 그 타깃이 된 것이 조선인들이었다. 당시 '조선인들이 혼란을 틈타 일본을 파괴하려 한다' '산업시설에 불을 지르고 우물에 독을 탔다'는 근거없는 헛소문들이 만연하기 시작했고 심지어 언론에까지 대대적으로 보도됐다.
 
괴소문에 격앙된 일본인들은 전국 곳곳에서 자경단을 조직하여 "조선인들은 나라의 적이니 전부 죽이자"고 선동하며 테러를 벌였다. 이로 인하여 당시 무고한 조선인들이 일본 각지에서 대량으로 학살당했다. 영화 <박열>에는 자경단들이 조선인이 발음하기 어려운 단어들을 말하게하여 조선인들을 판별하고 학살하는 장면들이 나오기도 했다.

그럼에도 일본내 조선인들의 숫자는 오히려 계속해서 증가했다. 값싼 노동력이 절실했던 일본에 1930년대에 이르러 무려 42만 명에 이르는 조선인들이 유입됐고, 2차대전과 강제징용 시기에 접어든 1940년대에는 약 200만 명에 이를만큼 폭발적으로 불어났다.
 
그런데 1945년 일본의 패망은 재일 조선인들에게 또다른 시련을 가져왔다. 패전으로 사회 시스템이 붕괴되며 극심한 식량난에 처한 당시, 대도시 한복판에서도 굶주림에 사망하는 사람들이 속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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