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분별한 우주개발... 미생물, 쓰레기 '예상 못한 부작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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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분별한 우주개발... 미생물, 쓰레기 '예상 못한 부작용'

sk연예기자 0 798 0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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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주의 중심을 발견하는 날, 많은 사람들이 그 중심이 아님을 깨닫고 실망하게 될 것이다.' 미국의 역사학자 버나드 베일리가 남긴 말이다. 우주에는 주인이 없고 누구의 소유도 허락하지 않았건만, 정작 인류는 자신들의 이해관계에 따라 우주를 차지하겠다고 지금도 경쟁을 벌이고 있다. 우주 탐사는 인간을 위한 또다른 기회의 신대륙일까. 아니면 인류를 파멸로 몰아넣을 재앙의 시작일까.
 
1월 31일 방송된 tvN 역사교양예능 <벌거벗은 세계사> 84회는 '기회인가 재앙인가, 21세기 우주패권경쟁' 편을 통하여 인류의 장대한 우주탐사 역사를 조명했다. 천문학자인 김성수 경희대 우주탐사학과 교수가 이날의 강연자로 나섰다.
 
미합중국 항공우주국(NASA)는 미국 대통령 산하 직속기관으로 전 세계를 대표하여 우주개발활동을 주도하고 있는 조직이다. 인공위성, 국제 우주정거장, 천체관측, 달 탐사 등은 모두 나사의 주도하에 남긴 우주 관련 성과들이다. 미국에서도 나사는 진정한 천재들만 갈 수 있는 꿈의 직장으로 불린다고.
 
이러한 나사가 탄생하고 성장하게 된 시대적 배경에는, 바로 미국과 소련의 냉전(Cold War)이 있었다. 20세기 들어 세계의 두 초강대국으로 자리잡은 미국과 소련은 지구는 물론이고 우주에서도 패권을 놓고 치열한 경쟁을 펼쳤다.
 
소련이 1957년 세계 최초의 인공위성인 스푸트니크 1호를 발사한 것은 미국에 큰 충격을 줬다. 미국은 소련의 우주기술이 자신들보다 앞서있다는 것을 확인했고, 인공위성 기술을 바탕으로 소련이 이제 거리에 구애받지 않고 미국 본토에 언제든 핵미사일 공격을 시도할 수 있다는 두려움에 직면한 것. 이를 미국에서는 '스푸트니크 쇼크'로 불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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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련은 스푸트니크 1호를 발사한 지 한 달 뒤인 1957년 11월 3일에는 2호를 발사하며 이번에는 '라이카'라는 개를 탑승시켰다. 떠돌이 개였던 라이카는 '우주로 간 최초의 생명체이자 우주견'이라는 타이틀을 안게 됐다. 하지만 당시만 해도 발사한 위성을 다시 회수할 수 있는 기술까지는 없었고, 발사 과정에서 온도조절 장치까지 손상되며 라이카는 발사 몇시간 만에 안타깝게 사망했다. 현 시대의 관점에서는 동물학대와 생명 경시로 큰 문제가 될 수 있는 사안이지만 1950년대의 사회적 인식은 지금과는 달랐다.
 
소련에 자극받은 미국은 같은해 12월 6일 로켓 '뱅가드 TV3'를 완성하지만 발사 2초만에 이륙도 못 하고 폭발하는 사고가 벌어지며 전 세계적으로 더 큰 망신만 당했다. 
 
우주개발경쟁에서 소련에 밀릴 위기에 놓인 미국은 독일 출신의 로켓 공학자 베르너 폰 브라운(1912-1977) 등 세계적인 과학자들을 대거 영입하여 1958년 1월 마침내 인공위성 '익스플로러'를 발사하는 데 성공한다. 폰 브라운은 '로켓 공학의 천재', '미국 우주개발의 아버지'로까지 불리우는 인물이다. 문제는 그가 2차대전 당시 히틀러 치하의 나치 독일에서 민간인 대량살상무기를 개발하는 데 앞장섰던 인물이었다는 것이다. 미국과 소련은 2차대전 이후 패권경쟁을 위하여 독일의 과학자를 포섭하는 데 공을 들였고, 폰 브라운도 이 과정에서 미국으로 이주했다.
 
인공위성 발사에 성공한 미국은 여기서 더 나아가 소련에 대항할 수 있는 국가적인 우주기구가 필요하다는 결론에 이른다. 그리하여 1958년 10월 1일 항공우주국 나사가 출범하기에 이른다.
 
미국은 1961년 로켓에 생명체를 태워 우주로 보내는 실험을 진행했다. 소련에게 강아지 라이카가 있었다면, 미국은 침팬지 '햄'이 있었다. 돌아오지 못한 라이카와는 달리, 햄은 사전에 레버를 누르는 훈련을 받았고 발사 이후 약 16분의 비행 만에 캡슐과 분리되어 대서양에 추락했으나 무사히 구조됐다. 햄은 비행완료 이후에도 약 20년간이나 건강하게 살았다.
 
미국과 소련의 우주패권 경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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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명체를 우주로 보낼 수 있는 기술을 확인한 미국과 소련의 우주패권 경쟁은 이제 '우주인'의 탄생으로 눈높이가 바뀌었다. 1961년 4월 12일 오전 9시 7분, 보스토크 1호에 탑승한 소련의 공군조종사 유리 가가린은 무사히 비행을 성공적으로 마치고 귀환하며 '세계 최초의 우주인'으로 이름을 올렸다. 소련이 이번에도 미국과의 우주 개발 경쟁에서 한 발 앞선 것이다. 미국도 불과 한 달 차이로 해군 조종사였던 앨런 셰퍼드가 우주비행에 성공하지만, 가가린의 그늘에 가려서 셰퍼드의 이름을 기억하는 이들은 많지 않다.
 
미국과 소련의 경쟁은 이제는 달(Moon) 탐사로 옮겨갔다. 존F 케네디 당시 미국 대통령은 '아폴로 계획'을 공개적으로 발표하며 사람에 의한 달 탐사와 무사귀환을 추진하는 비행탐사 프로젝트를 기획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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