캠코더 속 '젊은 아빠'의 모습... 뒤늦게 이해한 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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캠코더 속 '젊은 아빠'의 모습... 뒤늦게 이해한 마음

sk연예기자 0 718 0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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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설로 '형언하기 힘든' 영화의 탄생
 
무엇인가 목격했는데 타인에게 내가 보고 들은 걸 제대로 표현하지 못할 때 답답해진다. 감상에 대해 온전하게 소화하지 못했거나 그 대상이 텍스트로 전달하기 어려운 경우다. 영화라는 영상예술은 그 공감각적 형태 덕분에 유독 그런 경우가 적잖은데, 그런 대상을 만날 때마다 곤혹스러워지곤 한다. 이 영화 <애프터썬>과의 접촉이 딱 그랬다.
 
줄거리를 설명하자면 정말 몇 줄 되지 않는다. 주인공 소피는 20여 년 전 아빠와 함께했던 여름날의 터키 여행을 기록했던 캠코더를 꺼내 저장된 영상을 확인한다. 소피가 응시하던 LCD 액정은 스크린 밖 관객들이 지켜보고 있을 화면으로 전환된다. 그 안에 소피의 기억이 넘실대며 전달되기 시작한다.
 
<애프터썬>은 '형언하기 어려운' 영화다. 분명히 나는 이 영화를 보기는 했는데도 그렇다. 이야기는 이제 조숙한 사춘기 초입에 접어들락 말락 하던 시절의 주인공 소피가 아빠 캘럼과 오랜만에 단둘이 함께한 여름 터키여행 중 며칠 동안의 기억이 거의 전부다. 둘은 여름철 성수기 관광지에 들른 가족들이 겪게 되는 전형적인 상황에 처하고 다른 이들과 비슷한 경험을 치른다. 캠코더는 가족의 기억을 간직하기 위해 21세기 이후 광범위한 전성기를 누렸던 기계다. 딱히 특별할 것 하나 없는 설정이다.
 
그렇다면 이 영화에는 주목할 지점이 없는 걸까? 물론 아니다. 그랬다면 굳이 언급할 필요도 이유도 없었을 테다. 그렇지만 서두에 언급하던 것처럼 <애프터썬>은 쉽게 표현하기 어려운 미묘한 감정의 선이 새벽이슬 응결되어 이파리에 맺히듯 정체를 슬쩍 드러냈다 금방 사라져버리는 그런 영화에 속한다. 음식에 비유하자면 초심자가 오리지널 평양냉면 국물 처음 들이켜고 당황스러워하는 체험 격이다.
 
영화는 큰 줄기를 이루는 소피와 캘럼 부녀의 단출한 가족여행 파트에 성인이 된 소피의 짧은 회상 파트, 그리고 별다른 맥락 없이 순간 툭 튀어나오는 아빠 캘럼이 홀로 어둑한 클럽에서 무아지경에 몸을 맡긴 찰나 파트의 조합이다. 메인 파트인 가족 여행이 줄거리 뼈대를 이루고 나머지 두 파트는 중간 중간 단막 처리를 해주기 위한 엑스트라 씬 형태에 가까운 느낌이다.
 
젊은 아빠와 조숙한 딸의 '튀르키예' 여행이 남긴 기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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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대 초반에 들어선 딸 소피는 오랜만에 아빠와 여행 중이다. 아빠 캘럼은 모르는 이들이 보기엔 나이 터울이 좀 많이 나는 남매 사이로 보일 정도로 젊은 아빠다. 엄마는 이 여행에 함께 동행을 하지 않았다. 구체적으로 상세하게 설명되진 않지만 소피 부모는 이혼했거나 별거 중인 것으로 묘사된다. 이들 부녀는 평소에 거의 함께 시간을 보내지 못했기에 이번 여행에 제법 기대가 커 보인다. 하지만 둘의 여행은 요즘 화제가 되고 있는 모 OTT 드라마의 명대사에서 회자되는 항공기 내 계급구도를 떠올리게 한다. 그것도 '이코노미' 좌석으로 말이다.
 
부녀는 관광버스에 타고 패키지여행 티가 팍팍 나는 투어코스에 따라 판에 박힌 유원지와 명승지를 이동하는 여정을 치른다. 숙소에 도착하니 트윈베드로 예약해둔 침실은 행정착오로 더블베드 방이고 해결은 요원한 식의 상황이 연거푸 펼쳐진다. 일등급 숙소에 비즈니스 고객이라면 일어나기 힘든 경우일 테다. 그런 사연이 내내 속출하다 보니 아빠는 쫓기듯 내내 불안초조하다. 정작 딸 소피는 아쉽기는 해도 크게 개의치 않는데 말이다.
 
사이가 나쁘진 않아 보여도 일상생활 소통이 부족해 보이는 부녀관계 때문에 어렵게 기획한 가족여행이 망쳐질까 염려가 가득해뵈는 캘럼은 그리 넉넉하지 못한 여행자라는 자격지심 탓 더 안절부절 모양새다. 여행지 선정도, 그들에게 제공되는 서비스 수준도, 응당 평소보다 호기롭게 지불하게 되는 경비 지출도 젊은 아빠는 고심을 해가며 딸 앞에서 주눅이 들지 않으려 한다. 그들이 여행지에서 처한 빡빡한 상황은 딸 소피가 함께 어울리던 청소년 무리 중 소녀의 호의로 건네받은 자유이용권 서비스를 이용하며 환희에 찬 즐거운 표정으로 극대화된다.
 
너무 일찍 아빠가 된 존재가 겪는 불안
 
물론 이들 부녀는 관계가 원만한 편이다. 딸은 아빠와 격의 없이 대거리도 하고 현실남매 같은 순간들도 종종 마주한다. 그러나 소피의 눈(그리고 그 렌즈를 통해 바라보는 관객의 눈)에 내내 비춰지는 아빠 캘럼은 불안하고 자신감 없는 젊은이의 전형이다. 작품 속에서 줄곧 엿보이는 음울한 표정과 점점 빈번하게 표현되는 충동적인 방황들은 딸에게 최선을 다하려 노력하긴 해도 스스로 만족하고 자신감을 얻지 못하는 그가 지금껏 살아온 인생의 궤적을 엿보게 만든다.
 
그는 고향 스코틀랜드에 정착하지 못했고, 소피를 탄생시킨 어린 나이에 출발했던 결혼생활도 유지하지 못했다. 경제적으로 안정된 기반을 이루는 데도 성공하지 못한 상황이다. 특별히 일탈을 저질렀거나 게으름 같은 부덕도 없어 보임에도 자신에게나 주변 사람들에게나 당당하게 서지 못한 채 자신이 한때 꿈꿨을 삶과는 거리가 먼 현실에 옥죄이는 존재다. 그래서 늘 우울하고 망설이는 표정이다. '슬픈 광대'를 형상화한 그런 캐릭터라 할까. 터키로 여행지를 고른 것도 아마 현실적으로는 주머니 사정 때문일 테다. 거리가 아시아나 아프리카처럼 아주 멀지는 않지만 상대적으로 물가나 경비가 저렴한 곳이니 말이다. 그렇지만 딸에게 내세우는 명분은 늘 흐린 고향과 다르게 햇빛이 찬란하게 쏟아지는 동네란 이유에서다.
 
소피는 그런 아빠와 친해지고자 하는 십대에 들어선 소녀다. 그 나이에 외국 여행은 모든 게 낯설고 신기한 첫 번째 경험들일 테다. 그런 신나는 찰나 속에서도 친하고 헌신적인 것 같지만 결정적인 최후의 벽이 보이지 않는 장막처럼 들어선 아빠와의 관계가 신경 쓰인다. 그냥 얼른 아빠와 다정한 시간을 보내고 싶은데 정작 아빠인 캘럼은 초장부터 딸 마음은 몰라본 채 캠코더를 들이대고 자기를 찍느라 바쁘다. 통 왜 그러는지 이유를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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