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리와 로키타' 자막 없는 노래, 거장이 숨긴 메시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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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리와 로키타' 자막 없는 노래, 거장이 숨긴 메시지

sk연예기자 0 690 0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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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타일'을 넘어 시대의 진실을 쫓는 거장의 신작
 
한국에서도 세계적 거장으로 공인된 다르덴 형제의 이름은 하나의 '아이콘'이 된 지 오래다. 21세기 초부터 이들의 영화에서 특징적으로 발견되는 몇 가지 스타일은 국내 영화전공자들에겐 한 번씩은 모사나 습작의 대상이 될 정도였다. 카메라를 고정시키지 않고 들고 찍는 '핸드헬드' 기법과, 그로 인해 파생되는 흔들리는 인물과 화면이 영화 속 등장인물의 심리를 묘사하는 경지에 이르는, 일명 '등짝의 언어'로 불릴 만큼 절묘한 표현기법 등은 국내 숱한 학생독립영화에서 현재도 수많은 사례를 양산하는 중이다. 다르덴 형제의 작품 세계에 담긴 깊은 철학이나 사회적 발언에 대한 관심과 접근법 관련 조명 대신에 지나치게 테크닉과 형식주의에 천착한다는 비판도 나올 지경이다.
 
물론 다르덴 형제의 스타일은 상당 부분 그들의 작품세계에서 일관되게 놓지 않는 사회문제 조명을 소재로 삼는 작품들에서 더 자주 발견된다. 근래 국내 개봉영화 중 가장 다르덴 형제를 호명하게 만들었던 작품일 정주리 감독의 <다음 소희> 역시 그들의 자장 내에서 한국적 현실을 접목해 완성된 일례일 테다. <다음 소희>는 전주에서 실제로 발생했던 실업계 고등학교 3학년 현장실습생의 죽음을 극화한 작품으로 우리 사회를 충격에 빠트린 사건을 충실히 재현해내 개봉관객수를 초과하는 문제제기가 돋보이는 영화다. 개봉 당시 보도 자료나 인터뷰 등에서 공인된 것처럼 이 영화는 몇 편의 르포 서적을 참고한 바, 그중 유독 <알지 못하는 아이의 죽음>(지은이 은유, 사진 임진실, 출판사 돌베개, 2019) 도서명이 <다음 소희>와 다르덴 형제의 신작 <토리와 로키타>를 연결하는 가교처럼 느낌이 '확' 왔다.
 
다르덴 형제의 신작은 그들이 1978년 영화를 만들기 시작한 지 반세기 가까운 시간 동안 몇 개의 테마를 꾸준히 연마해온 전통에서 벗어나지 않는다. 이들은 지속적으로 우리 세계의 문제를 시민의 일원으로 관찰하고 발언해 왔다. 그중에도 다르덴 형제의 작품들에서 필수재료처럼 등장해 온 '아이'와 '이민', '노동', 그리고 이 소재들을 결속하는 실타래 같은 '윤리'의 문제가 <토리와 로키타>에서도 진화와 변주를 거듭하며 꿈틀거린다. 이쯤 했으면 기존의 방식을 답습해도 뭐라 할 사람 몇 없을 텐데, 영화경력 45년 차의 형제 감독은 지금 세계의 쟁점과 판치는 불의를 향해 분노하고 비판하는 매개로 카메라를 활용하는 데 망설임이 없다.
 
남매를 갈라놓은 '체류증'이 낳은 우리 시대의 비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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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가 시작된다. 다르덴 형제 영화의 또 다른 특이점인 '롱 테이크' 장면이 시작부터 등장한다. 유럽 국가들이 몸살을 앓고 있는 이민자 문제가 연속된 화면 속에서 본 작품의 핵심 뼈대가 될 것임을 각인시킨다. 아프리카 계 10대 소녀 '로키타'는 자신이 난민 구제 대상이라는 것을 심의위원들 앞에서 증명해야 하는 상황이다. 그는 필사적으로 자신의 절박함을 어필하지만 너 같은 아이 골백번은 심사해봤다는 무언의 표정 앞에서 금방 허물어질 판이다. 끝내 제대로 심사를 받지도 못하고 공황장애 증세를 보이던 로키타는 절차를 연기하고 돌아서고 만다.
 
로키타에겐 남동생 '토리'가 있다. 동생은 누나와는 달리 체류증이 발급되어 있다. 토리는 고향에서 주술사 능력을 가졌다고 해서 종교적 박해를 받은 기록이 있었고, 그 때문에 아동에 대한 인도적 보호 대상으로 체류자격을 허락받은 덕분에 상대적으로 안정된 상황이다. 남매는 같은 보호시설에 수용되어 있지만 둘의 상황은 천양지차인 셈이다. 토리는 시설에서 생활하며 학교도 다니지만 로키타는 막연하게 체류자격 심사 통과만 기다리며 붕 뜬 상태다. 학교도 다니지 못하고 공식적인 일자리를 얻을 수도 없다. 모든 게 불안정하고 며칠 앞을 점칠 수 없는 전형적인 떠돌이 난민 신세다.
 
합법적 일을 할 수 없을 텐데 로키타는 백인 요리사 벨팀이 일하는 식당 손님들 앞에서 노래를 부르거나 배달을 하며 푼돈벌이를 한다. 그런데 배달하는 품목이 식당에서 취급하는 피자나 기타 음식 종류가 아니다. 벨팀은 주방장을 맡고 있지만 마약을 생산하고 유통하는 조직의 거래책임자이기도 하다. 벨팀의 고객들에게 마약을 배달하는 게 로키타에게는 몇 안 되는 수입원이 된다. 시설에서 당장 의식주는 해결될 텐데 왜 그는 위험천만한 일에 뛰어든 걸까? 실은 로키타는 자신을 지중해 바다 건너 프랑스로 밀입국하게 도운 브로커 조직에 비용을 갚아야 하는 상황이다. 수금이 미뤄지면 브로커들은 로키타를 찾아와 협박하는 것은 물론, 학창시절 불량학생들이 몸을 뒤져 숨겨둔 돈을 뺏던 것 마냥 수색하는 것도 서슴없다. 게다가 로키타는 변변한 수입이 없는 고향의 가족들에게서도 송금 압박을 받는다.
 
토리는 그런 누나를 묵묵히 위로하고 챙긴다. 곧 체류증이 나올 거라며 함께 말을 맞춰 반드시 성공하자고 남매는 다짐한다. 하지만 정식 심사에서도 위원들의 치밀한 질문에 로키타는 허둥대며 제대로 답하지 못한다. 끝내 탈락하고 어깨를 축 늘어뜨린 채 떠나는 로키타 대신에 토리가 위원에게 항의하지만, 정말 사실이라면 유전자 검사를 받아보길 제안하는 충고는 무용할 따름이다. 둘은 친남매가 아니기 때문이다. 절박해진 로키타는 벨팀에게 체류증 위조를 문의하고, 벨팀은 대가로 자신들의 마약 공장에서 일하길 요구한다. 노동조건은 열악하고 공황장애가 있는 로키타는 폐쇄된 작업장에서 견디기 힘들다. 토리는 로키타와 면회를 요구하다 비밀통로를 발견한다. 어렵사리 둘은 재회하지만 위기는 끝나기는커녕 거듭 이어진다.
 
다르덴 형제가 응시하는 불의한 세계의 풍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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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리와 로키타>는 형제 감독이 지속적으로 천착해온 세계의 과거와 현재의 모순, 그리고 바뀌지 않은 불의에 대한 비판적 고찰의 최전선이라 할 작업이다. 주인공들의 위태로운 처지는 다르덴 형제 특유의 강조방식, 남매의 불안정한 상황을 부각시키는 데 탁월한 효능을 발휘하는 흔들리는 카메라 워킹 → 그로 인해 명민하게 포착되는 떨리는 주인공의 신체와 확장된 도구들 → 시청각적 이미지와 배경 속에 잔뜩 숨어있는 수많은 포석들로 선언적 강조나 교과서적 해설에 치우치지 않으면서도 효율적으로 주제와 메시지를 관객에게 전달하는 경지에 도달해 있다. 한국에서 그저 특정한 테크닉으로만 소비되곤 하는 측면이 아니라 주제의식을 효과적으로 표현하기 위해 고도로 진화한 정수로서 다르덴 형제 특유의 '스타일'을 확인하는 게 더욱 반갑다.
 
물론 이 모든 것을 시작하게 된 계기는 두 주인공의 처지로 압축된 수많은 이들의 고통에 대한 분노다. 토리와 로키타는 우리가 감히 상상하기 힘든 천신만고 끝에 (말 그대로 산 넘고 물 건너) 그토록 꿈꾸던 1세계 선진국에 진입했다. '하라가스'라는 신조어를 만들 만큼 매년 5천 명 넘게 북아프리카에서 지중해를 건너는 중에 사고로 수장되는 잔인한 현실에서 일단 토리와 로키타는 유럽 대륙에 도착은 한 셈이다. 하지만 이제 모든 게 다 잘 풀릴 것이라 희망을 품었을 그 순간부터 이들은 그것만으로 무엇 하나 해결되지 않는다는 걸 깨닫고야 만다. 그리고 이런 악순환은 21세기 들어 생겨난 게 아니라는 점이 더 소름끼치는 지점이다. 영화 속 주인공들이 목격하고 체험하게 되는 잔혹한 극중 현실은 그러한 실제 역사적 상황을 정교하게 세공된 미니어처 마냥 구현해낸다.
 
토리와 로키타는 서아프리카의 소국 '베넹'에서 벨기에까지 먼 길을 왔지만 누구도 이들을 환영하지 않는다. 왜 하필 베넹일까? 호기심을 품은 관객이 조금만 조사해보면 다르덴 형제의 주도면밀함이 곧 확인된다. 베넹을 비롯한 서아프리카 상당부분은 과거 프랑스 식민제국의 일부였다. 프랑스어 문화권인 벨기에로 스며들어 난민 신청을 할 개연성이 충분하다. 그렇게 식민 종주국으로 밀입국해 체류허가만 동아줄처럼 학수고대하는 10대 남매에게 예정된 운명인 것처럼 잔혹동화가 펼쳐진다. 물론 이 정도라면 서구문명의 원죄가 낳은 숱한 현실 문제를 소재로 삼은 무수한 문화예술상품 중 하나에 그칠 테다. 거장의 심모원려는 그것에 그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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