흥미진진한 저잣거리 야담, 89년생 감독의 놀라운 데뷔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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흥미진진한 저잣거리 야담, 89년생 감독의 놀라운 데뷔작

sk연예기자 0 991 0 0
쇠락한 중국 작가주의 감독의 명맥을 잇는 '앙팡 테리블'의 등장
 

중국영화를 본격적으로 접하게 된 계기는, 어릴 적 비디오로 섭렵하던 홍콩영화를 제외한다면 1990년대 이후 문화개방으로 볼 수 있게 된 국제영화제 수상작들이었다. 예술영화로 소개되었던 당시 작품들은 장예모와 천 카이거의 영화들, 훗날 '5세대'라는 구분으로 분류하게 된 감독들의 것이었다.

<붉은 수수밭>과 <귀주 이야기>, <국두>, <홍등>, <인생>으로 이어지는 장예모의 80-90년대 작품들, <황토지>로부터 <대열병>, <해자왕>, <현위의 인생>, 그리고 <패왕별희>로 정점에 올랐던 천 카이거의 동 시기 작품들은 국내에서도 적잖은 이들의 인생영화 목록에 새겨질만한 놀라운 발견이었다.

이 (1950년 전후 출생의) 5세대 감독들은 중국현대사의 격랑을 몸소 체험해온 경험과 함께 문화대혁명이 종결된 후 개혁 개방 과정에서 영화교육 기회를 얻을 수 있었던 이들이었다. 그리고 마침 서방과 관계 개선이 이뤄지던 참이라 해외 영화제에 소개될 계기도 넓어지던 참이다. 그런 타이밍 덕에 5세대 감독들은 그들에게 주어진 기회를 놓치지 않고 활약할 수 있었다.
 
이후 그 후배격인 6세대 감독들에 대한 기대는 결코 적지 않았다. '지아장커'나 '왕빙' 같은 이름이 곧 세계영화계에 등장했다. 이제 일군의 새로운 신예들에 의해 급속한 개혁개방의 한가운데에서 소외되고 시련당하는 현대 중국인들의 이야기가 다양한 경로와 방식으로 소개되기 시작했다. 지아장커의 <스틸 라이프>는 싼샤 댐 건설로 수몰된 마을과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로, 왕빙의 <철서구>는 20세기 광산과 공장으로 번영하며 경제발전의 일익을 담당했지만 이제는 쇠락한 동북지방의 황량한 풍경을 다뤄 세계적인 주목을 얻었다. 5세대와는 15년 정도의 격차가 있는 이들은 '지하전영'(한국의 '독립영화'와 유사개념)으로 정부당국의 검열 밖에서 출발한 측면에서도 중국의 개혁개방정책과 함께 탄생한 존재들이다.
 
하지만 이들의 활동은 수시로 벽에 부딪히기 시작한다. 여전히 존재하는 중국정부의 검열과 함께 경제성장과 함께 대두된 상업주의의 광풍 속에서 이제 중국영화의 주류는 독립예술영화 작가들과 무관하게 된 지 오래다. 지아장커는 당국과 밀고 당기기에 치여 가며 정체되어가고, 왕빙은 해외를 떠도는 중이다. 주류영화계에서 줄타기를 잘 해내던 (<집결호>와 <대지진>의) 풍소강(펑 샤오강)도 점점 당국과 긴장이 높아져간다. 그런 가운데 미국에 이어 세계 2위 영화시장이 된 중국 내에선 자국 내수용도 + 초강대국의 위상을 과시하는 일종의 '국뽕'영화가 범람하는 중이다. 그런 가운데 표현의 자유가 널뛰는 상황에서 이제 당국과의 대립에다 국수주의에 기운 대중의 기호가 굳어지면서 과거 세계 영화계를 놀라게 하던 중국 '지하전영'은 힘을 잃어버렸다.
 
이제 한때 중국영화를 언급할 때 반드시 첫 번째로 언급되었던 세대 구분은 별 의미가 없어진 셈이다. 그동안 세계에 드러나지 않던 유구한 문명유산과 함께 그 어떤 픽션보다 더 스펙터클한 격동의 현대사를 품어내는 예술영화들로 서구 영화계에서 인정받는 대신, 자국 내 흥행수입만으로도 10억 달러 달성이 임박했다는 막강한 내수시장과, 그 시장을 통제하는 공산당 정부의 기호를 맞추는 게 핵심적인 고려가 된 것이다. 그 결과 국수주의와 오락만능이 결합된 중화 블록버스터가 양산되고 있지만 일부 예외를 제외하면 국외의 관심은 반대급부처럼 쪼그라드는 중이다.
 
그런 가운데 낯선 이름이 홀연히 등장했다. 국내에선 탕웨이 주연 작품으로 알음알음 알려진 2018년 영화 <지구 최후의 밤>을 선보인 89년생 감독 '비간'이다. 중국 예술영화 또는 작가주의의 미래로 주목받는 감독의 두 번째 장편은 그해 칸영화제 주목할 만한 시선부문에 초청되었고, 그 후광에 힘입어 이듬해 국내에서도 개봉했다. 소수이지만 열광적인 팬 층과 함께 평단의 격찬이 뒤따랐다. 그리고 이 미지의 감독의 데뷔작이 뒤늦은 개봉을 맞았다. 2015년 작품이니 8년이나 걸린 셈이다. 이 기념비적인 첫 장편은 여러 면에서 후속작의 초기 버전 혹은 연작의 출발점에 가까운 면모가 도드라진다.
 
구이저우 성 묘족 자치구 한 구석에서 벌어지는 환상동화
 
(감독의 후속 작품 <지구 최후의 밤>의 배경이기도 한) '카일리'는 데뷔작에서도 주요 무대로 등장한다. 실제 감독 본인의 고향인 카일리가 스크린 안과 밖을 공히 점유한다. 이 매력적인 배경은 영화의 진주인공 같은 존재라 해도 과언이 아닐 테다. 영화를 본 다음이라면 이 강조가 결코 허투루 던지는 게 아니란 점을 이해하리라 믿는다.
 
영화의 주인공 '천성'은 모종의 사연으로 감옥에서 형기를 마친 뒤 출소해 고향으로 돌아왔다. 이 중년 남자는 노령의 여성 의사와 함께 마을 진료소에서 일하는 중이다. 같은 동네에 사는 그의 유일한 형제는 천성과 사이가 좋지 않지만 그는 형제의 아들인 어린 웨이웨이를 무척 아낀다. 그러나 웨이웨이의 아버지는 생업에 게으른데다 아이를 집에 가둬두다시피 한 채 늘 놀러 다니기만 한다. 그래서 형제는 만날 때마다 다툰다. 천성은 조카를 자기가 대신 키우겠다고 하지만 그의 형제는 참견하지 말라며 대립한다.
 
그런 가운데 어느 날 웨이웨이가 집에서 사라지고 천성은 조카를 찾기 위해 동분서주한다. 그리고 함께 일하는 여의사에게서 자기 대신에 인근 마을인 '전위안'으로 찾아가 옛 지인에게 어떤 물건을 전해달라는 부탁을 받는다. 그 지인은 한때 여의사와 마음이 오가던 이지만 지금은 중병으로 오늘내일하는 중이라고 한다. 마침 천성이 겨우 알아낸, 조카가 가 있다는 곳도 전위안이다. 이참에 겸사겸사 천성은 전위안으로 향하는 여행길에 오른다. 그 가운데 천성의 사연 많은 과거와 웨이웨이의 행방이 조금씩 밝혀지기 시작한다. 하지만 영화의 주안점은 그 관계의 규명과는 멀찌감치 떨어져 있다.
 
천성은 산 넘고 물 건너 웨이웨이를 찾는 여정을 이어간다. 하지만 어느새 조카를 찾아 나선 주인공의 행로가 마치 라비린토스 미로에 말려든 것처럼 공전하기 시작한다. 천성의 이동코스는 시간과 공간이 뒤엉킨 듯 모호한 상황이 거듭된다. 그리고 예상치 못한 뜻밖의 인물들이 불쑥 솟아나듯 천성의 앞에 연이어 등장한다. 그와 자꾸 마주치는 청년은 자신이 '웨이웨이'라 자처하고, 지나던 마을에서 머리손질을 하기 위해 들른 미용실 여인은 천성의 과거사를 굳이 캐묻는다. 그리고 천성은 그를 위해 잘 못하는 노래를 마치 작별선물처럼 읊조린다. 그런 가운데 진실여부가 의심스러운 '원시인' 목격담이 수차례 언급된다. 여행길에 만난 이들은 그 초자연적 존재를 피할 방책을 알려주지만 천성은 그 비법을 마다하고 초현실적인 경로에 자기 몸을 맡긴다. 과연 주인공의 여정은 어떻게 마무리될까 통 종잡을 수 없다.
 
전통 시조와 고전명작 오마주가 어우러진 '영화적 체험'의 향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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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를 보면서 많은 이들이 궁금해 할 사건의 논리적 전개와 명쾌한 서사의 기승전결은 감독 비간이 고작 26살에 연출한 놀라운 데뷔작에서 절대로 결정적 요소가 아니다. <카일리 블루스> 속에서 펼쳐지는 일련의 이야기는 마치 주인공의 꿈 속 상상이 아닐까 싶을 정도로 몽환적이고 불투명한 점들로 가득 채워져 있다. 영화 속 스토리가 진행되면서 주인공을 둘러싼 몇몇 단서가 해명되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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