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보고서가 고발한 한국 대통령의 '정치자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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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보고서가 고발한 한국 대통령의 '정치자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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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2일 공개토론회에서 윤석열 정부는 배상은 물론 사과도 받지 않는 선에서 강제징용(강제동원) 문제를 마무리하고 한국 정부가 책임을 떠안는 방안을 제시했다.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는 15일 기자회견에서 "일한관계를 건전한 모습으로 되돌리고, 나아가 발전시키기 위해 한국 정부와 계속해서 긴밀하게 의사소통을 도모해 가고 싶다"라며 환영의 뜻을 표했다.
 
1945년 이후의 한일관계에서 일본이 가장 바람직하게 평가하는 시점은 식민지배 문제 해결 없이 한일관계를 정상화시킨 1965년이다. 이때 박정희 정부와 사토 에이사쿠 내각이 체결한 한일기본조약 및 부속협정(청구권협정 포함)은 해방 이전의 일반 민사채권을 정리하는 데 그쳤다. 강제징용·위안부·강제징병 등의 불법적 전쟁범죄는 다뤄지지 않았다.
 
일본 측의 태도에서 알 수 있듯이, 1965년은 지금의 강제징용 협상에서 일본 측의 무기가 되고 있다. 일본은 한일협정으로 통칭되는 기본조약 및 부속협정이 체결된 1965년 이 해에 모든 문제가 해결됐다는 거짓 주장을 내세우고 있다. 이때 제공된 경제협력자금이 마치 식민지배 처리 자금이었던 듯이 하면서, 배상은 물론이고 사과도 더 이상 할 필요가 없다는 입장을 고수한다.
 
이런 상황이 초래된 데는 한·일 양국을 압박해 문제를 봉합시킨 미국 정부의 책임이 가장 크고, 협정 체결에 대한 한국민들의 저항이 거센 것을 지켜보면서도 박 정권을 부추긴 일본의 책임도 크지만, 자신이 피해자국 대통령임을 망각하고 문제를 봉합한 박정희의 책임도 매우 크다. 박정희 전 대통령은 지금의 일본 정부가 1965년으로 시간을 되돌리고 싶어 하도록 만든 주요 장본인이다.
 
박정희는 일본 괴뢰국인 만주국의 육군군관학교(만주군관학교)에 입학한 1940년 4월부터 제국주의의 밥을 먹고 살았다. 일본 육군사관학교 제57기로 편입된 1942년 10월 이후로도 마찬가지다.
 
그는 1944년 7월에는 육군 소위로 임관, 중국 내 항일세력을 토벌하는 데 가담했다. 이듬해 7월에는 중위로 진급했다. 이런 상태로 1945년 8월까지 활동했으니, 62년 인생 중 5년간은 일본 밥을 먹거나 친일재산을 축적한 기간이었다.
 
그런데 그가 제국주의 덕분에 획득한 이익은 그 정도에 그치지 않았다. 그것은 여타 친일파들의 수익을 압도적으로 능가했다. 5년간의 숙식 혜택과 1년간의 봉급 수령과는 상상도 되지 않을 정도의 이익이 그의 수중에 별도로 들어갔다.
 
경협 자금을 정치자금으로 쓴 박정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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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 정권 말기인 1978년 10월 31일 미국 하원 국제관계위원회 국제기구소위원회(위원장 도널드 프레이저)가 발간한 <한미관계 조사>는 식민지배 문제가 박정희에게 어떻게 금전적 이익이 됐는지를 보여준다. <한미관계 보고서> 혹은 <프레이저 보고서>로도 불리는 이 문건은 1965년 청구권협정 체결의 결과로 한국에 유입된 경협자금을 언급하면서 "일부 자금은 민주공화당의 정치자금으로 사용되었다"라고 고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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