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하무인 효명옹주의 비극적 결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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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하무인 효명옹주의 비극적 결말

sk연예기자 0 178 1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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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가 배경인 tvN 사극 <조선 정신과 의사 유세풍 2>에 매우 활력적인 인물이 등장한다. 임금(오경주 분)의 이복동생인 옹주 이서이(우다비 분)가 바로 그다. 특권층 대신들의 눈치를 살피는 이복오빠와 달리 그는 안하무인의 극치를 보여준다. 언제나 자기중심으로 행동할 뿐 아니라, 군병들을 끌고 다니며 위세를 부릴 때도 있다.
 
그런 그가 주인공 유세풍(김민재 분)에게 열렬히 구애하고 있다. 유세풍이 명확히 거절하는데도, 유세풍 옆에 동료 서은우(김향기 분)가 있는데도 권력을 남용해 자기 뜻을 이루려 한다. 중매혼을 안 하면 왕따를 당하는 시대 분위기에 관계없이 그는 자유결혼을 열정적으로 추구하고 있다.
 
조선 후기인 인조시대를 살았던 효명옹주도 안하무인이었다. 병자호란 패전의 상처를 입은 인조가 40대 초반에 얻은 고명딸인 그는 아버지의 극진한 사랑을 받으며 자랐다. 어머니인 후궁 조귀인(귀인 조씨) 역시 두 아들인 숭선군 및 낙선군보다 옹주를 훨씬 편애했다.
 
조귀인이 '딸바보'였다는 점은 훗날 인조가 죽고 2년 뒤에 숭선군이 역모 혐의를 받을 때 숭선군의 보모인 예금(禮今)의 입에서도 나왔다. 의금부의 수사 및 심문 기록인 추안(推案)과 국안(鞠案)을 수록한 <추안급국안>에서 그 진술을 확인할 수 있다.
 
<추안급국안>에 따르면, 음력으로 효종 2년 2월 13일(양력 1653년 3월 4일) 심문을 받은 예금은 조 귀인이 옹주만 편애한 일을 설명하면서 조귀인이 숭선군에게 "빨리 죽어 버리라"고 저주하는 일이 있었다고 진술했다. 이 때문에 숭선군의 여자 하인들이 "딸자식을 어찌 이렇게 편애하고 아들을 어찌 이렇게 미워한다 말인가?"라며 한탄하는 일도 있었다고 한다.
 
그런 상황이 효명옹주를 얼마나 도도하게 만들었는지를 보여주는 일화가 옹주의 결혼 때 있었다. 실학자 이긍익의 <연려실기술>이 효종의 부마인 정재륜의 <공사견문록>을 인용해 그 일화를 소개한다.
 
이에 따르면, 11세 된 새신부의 혼인을 축하하는 잔치에 왕실 여성들이 참석했다. 이 자리의 어른은 인평대군(옹주의 이복오빠)의 부인인 오씨였다. 그러나 옹주는 오씨의 권위를 인정하지 않았다.
 
인평대군은 옹주보다 15세 많았다. 아내가 남편보다 몇 살 많은 경우가 흔했으므로, 오씨와 옹주의 나이차는 그보다 컸을 수도 있다. 10대 후반에 자녀를 낳는 경우가 많았으므로, 오씨와 옹주는 호적상으로는 형제 항렬이지만 실제로는 부모·자식뻘이 될 수도 있었다.
 
우리 시대에는 맞지 않은 이야기이지만, 혈통을 놓고 봐도 오씨와 옹주 사이에는 커다란 벽이 놓여 있었다. 인평대군은 인조의 정실부인인 인렬왕후 한씨의 아들이었다. 그래서 인평대군과 혼인한 오씨는 왕실의 적통 신분을 갖고 있었다. 이 시대 관념으로 보면 후궁의 딸인 효명옹주보다 훨씬 나은 입장에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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