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업에서 승리한 광산 노동자들, 여전히 해결되지 않은 문제

인터넷 뉴스


지금 한국의 소식을 바로 확인해보세요.

파업에서 승리한 광산 노동자들, 여전히 해결되지 않은 문제

sk연예기자 0 300 0 0
'노동자들이 승리했다'

이 말을 현실에서 찾기는 어렵다. 언론에서 볼 수 있는 말은 주로 '협상이 중단됐다', '고공농성이 시작됐다', '경찰 진압으로 마무리됐다' 또는 '합의에 도달했다' 정도이다. 현실파업은 합의안에 도장을 찍어야 끝이 난다.

이렇게 체결이 어려운 계약서가 또 있을까? 신문이나 방송에서 파업 관련 기사를 보면 항상 답답했다. 이럴 때 보면 좋은 뮤지컬이 있다. 우연히 만난 뮤지컬, '할란카운티'.

파업에서 승리한 광산 노동자들
IE003187460_STD.jpg?53
 
무대는 1970년대 미국 할란카운티다. 광산노동자들은 파업에서 승리했다. 아프리카계 미국인, 여성, 어른, 아이 할 것 없이 모두가 파업에 참여했다. 광산 노조가 파업 승리를 선언할 때 후련한 느낌을 받았다. '할란카운티'는 실화를 바탕으로 창작한 뮤지컬이다.

할란카운티 광산노동자는 역사 속에서도 파업에 승리했을까? 궁금해졌다. 검색해 보니 실제 파업 사건을 다룬 다큐멘터리<할란카운티 U.S.A>가 있었다. 스트리밍 서비스는 찾지 못했다. 결국 국회도서관에서 DVD로 다큐멘터리를 봤다.

다큐멘터리 무대는 1973년 미국 켄터키주 할란 브룩사이드 광산이었다. 광산 노동자와 가족들은 하수도 시설도 없는 컨테이너에 살고 있었다. 광부들은 석탄 가루인 탄진으로 폐 기능이 악화됐다. 조금만 걸어도 숨이 찼다. 그들이 사는 세상은 온통 검은색이었다. 24시간 내내 지옥과도 같았다. 집도, 탄광도, 총탄이 오가는 파업현장까지. 그들이 총에 맞으면 그제야 붉은색을 볼 수 있었다.
 
할란카운티 파업을 이해하려면 1931년으로 거슬러 올라가야 한다. 할란카운티에서는 제1차세계대전(1914-1918) 때부터 석탄을 캤다. 당시 일당은 5달러였다. 전쟁이 끝난 후, 석유 사용이 늘고 석탄 사용은 줄어들기 시작했다. 1931년에는 주당 8달러를 받았다. 광부들은 탄광회사가 제공한 임대 주택에서 살았다. 임금이 높아지면 회사는 임대료를 올렸다. 생활 필수품을 살 때도 회사가 운영하는 잡화점만 가야했다. 생필품 가격은 평균보다 20% 비쌌지만 다른 가게에서 물건을 사면 해고되었다. 이 상황에서 1931년 대공황이 닥쳤다.
 
할란카운티 광부들은 노동조합을 결성하기로 결정했다. 정관을 만들고, 노조위원장 선출을 위한 투표일을 잡았다. 그날 회사 측은 노조 설립 자체를 막기 위해 아주 간단한 방법을 사용했다. 모든 노동자를 집에 가두었다. 집밖으로 나오지 못하게 총을 들고 막았다.
 
그로부터 40년이 지난 1970년, 광부들 상황은 크게 나아지지 않았다. 다른 지역 광부들이 일주일 13달러 받을 때 할란카운티 광부는 일당으로 8달러 받고 있었다. 여전히 하수도 시설은 없었다. 회사가 제공한 집에 살았고, 탄 진폐증 진단을 받으면 광산에서 쫓겨났다.
전체 내용보기

0 Comments

인기 동영상



포토 제목

포인트 랭킹


커뮤니티 최근글


새댓글


추천글 순위


섹스킹 파트너


Facebook Twitter GooglePlus KakaoStory NaverBan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