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어령의 이상한 영화 '장군의 수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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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어령의 이상한 영화 '장군의 수염'

sk연예기자 0 273 0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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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6년 이어령의 단편소설 <장군의 수염>이 발표됐을 때 한국 사회는 격변의 소용돌이 속으로 빨려 들어가고 있었다. 1965년 미국의 압력으로 단행된 '한일 국교 정상화'로 촉발된 사회-정치적 불안정의 파장은 문화-예술계까지 파급되었다. 1965년 단편소설 <분지>로 소설가 남정현이 중앙정보부에 소환돼서 고문받고, 검찰에 송치되었다가 석방된다.
 
사정당국은 여기에 만족하지 않고 1966년 남정현을 반공법 위반 혐의로 기소하기에 이른다. <분지>가 반미사상을 부추겨 북한의 대남 적화전략에 동조한 작품이라는 것이 검찰의 기소 요지였다. 이때 33살 청년 비평가이자 소설가 이어령은 피고 측 증인으로 법정에 출두한다. 그가 법정에서 진술한 내용은 오늘날에도 음미할 만하다.
 
"문학은 본질적으로 저항이다. 아무리 평화 시대라 해도 작가는 저항성을 지닌다. 병풍의 호랑이를 진짜 호랑이로 아는 자는 놀라겠지만, 그것을 그림으로 아는 자는 놀라지 않는다. <분지>는 소설이지 신문 기사가 아니다."
 
이어령은 1968년에 <사상계>와 <조선일보>를 중심으로 김수영 시인과 '불온시 논쟁', 달리 말하면 참여 논쟁을 펼친다. 진보 진영의 대표 주자 김수영과 떠오르는 신예 비평가 이어령의 논쟁은 많은 화제를 불러왔다. 당대 문화인들이 침묵하는 가장 큰 원인을 김수영은 정치권력의 탄압으로, 이어령은 문화인들의 소심증으로 파악한다.
 
'참여의 본질은 기다리는 것이 아니라, 개혁하는 것'이라고 일갈했던 이어령. 소설 <장군의 수염>은 이어령의 이런 사유와 인식을 잘 드러낸다. 영화는 1968년 9월 명보극장에서 개봉되었다. 주인공의 추상적이고 사변적인 의식과 생활방식 때문에 흥행에 실패할 것이란 세간의 예상은 10만 관객 동원으로 완전히 어긋나 버린다.
 
사진기자 김철훈
 
<장군의 수염>을 각색한 이는 당대 모더니즘 소설로 이름을 날리던 김승옥이었다. 그는 23살이던 1964년 <무진기행>을 발표했고, <서울, 1964년 겨울>로 1965년에 동인문학상을 받았다. 1967년 개봉된 영화 <안개>는 소설 <무진기행>을 영화로 만든 것이었는데, 김승옥이 각색을 담당했다. 1968년 김승옥은 영화 <장군의 수염>으로 대종상 각본상을 받는다.
 
<장군의 수염>은 추리물 형식을 가진다. 전직 사진기자 김철훈이 세 들어 살던 방에서 사체로 발견된다. 노련한 박 형사와 후배 형사는 열린 난로 뚜껑으로 새어 나온 연탄가스를 사인(死因)으로 보고 타살에 중점을 두고 수사를 시작한다. 그들은 소설가와 신문사 동료, 정 박사와 미지의 여인 나신혜 등을 수사선상에 올리면서 철훈의 행적을 추적한다.
 
도스토예프스키의 장편소설 <죄와 벌>의 등장인물 포르피리처럼 그들은 여러 각도로 철훈의 생각과 삶의 행로를 따라간다. 그리하여 철훈의 가족사와 세상을 바라보는 그의 인식과 세계관이 조금씩 관객에게 밝혀진다. 북(北)에 터를 둔 명문가이자 대지주였던 권위적인 아버지와 해방 이후의 토지개혁, 맏아들의 저항과 멸문지화(滅門之禍)의 상황.
 
어린 시절에 철훈은 또래 아이들과 어울려 놀지 못한다. 그것은 엄격한 아버지의 명령에 따른 것이다. 사대부 자손이 상놈들의 자식과 놀면 안 된다는 것이다. 나이 어린 철훈이 겪어야 했던 소외와 고독은 오래도록 심리적인 상흔을 남긴다. 아울러 그가 어린 시절 어머니의 인두로 인해 얻은 이마의 상처는 성인이 되도록 없어지지 않는다.
 
철훈은 크고 작은 상처를 안고 성장했으며, 그것은 철훈의 생애 마지막 지점까지 동행한다. 그에게는 마음을 나눌 친구 하나 없었고, 급변하는 세태에 적응하지 않으려는 그의 의식적인 노력을 이해하고 위로해 줄 인물도 없었다. 1960년대 한국 사회의 '외로운 늑대' 철훈의 인생을 압축적으로 그려낸 만화영화가 <장군의 수염>에 등장한다.
 
<장군의 수염>과 만화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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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군의 수염>에 도입된 만화영화는 21세기 관점에서 보아도 낡지 않은 수작(秀作)이다. 독립을 위해 투쟁한 위대한 장군이 그를 추종하는 군인들과 함께 말을 타고 독립국의 수도로 진군한다. 장군에게는 거대한 수염이 달려 있었고, 독립군도 하나같이 수염을 기르고 있다. 수염과 독립은 아무런 관련도 없지만, 모든 국민이 수염을 기르기 시작한다.
 
단 한 사람만은 수염을 기르고 싶어 하지 않는다. 소심한 그는 사회에서 소외되어 다니던 회사에서 쫓겨나고 추적망상에 빠진다. 그가 경찰서에 들러 자수하러 왔다고 하지만, 수염을 기르고 말고는 개인의 자유란 말만 돌아올 뿐이다. 모두가 수염을 기르는 판에 수염을 기르지 않겠다는 나약한 시민의 마지막 길은 무엇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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