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라톤 포기하고 은행 취직한 손기정, 그가 선택한 저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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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라톤 포기하고 은행 취직한 손기정, 그가 선택한 저항

sk연예기자 0 428 0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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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설의 마라토너' 손기정(孫基禎, 1919-2002)과 남승룡(南昇龍,1912-2001) 선생은 1936년 베를린올림픽에서 한국인 운동선수로는 최초로 올림픽 메달을 획득한 대한민국 체육계의 선구자들이다. 또한 서윤복(徐潤福, 1923-2017) 선생은 바로 이 두 사람의 제자로, 1947년 보스턴 마라톤에서 광복 이후 첫 세계제패의 영광을 차지했다.

일제강점기와 광복 초기의 혼란했던 시대를 거치며, 마라톤으로 한국인의 자존심을 지키려고 노력했던 스포츠 영웅들의 이야기는 오늘날 우리에게 어떤 교훈을 남기는가. 7월 13일 방송된 SBS <꼬리에 꼬리를 무는 그날 이야기>에서는 '총성과 함성-보스턴 상륙작전' 편을 통하여 대한민국 스포츠를 빛낸 전설의 마라톤 영웅들의 이야기를 조명했다.
 
일제강점기 시대인 1932년 4월의 일본 도쿄, 양정고등보통학교 육상부 선수들은 일본 최대 달리기 대회에 유일한 조선 팀으로 참가해 일약 우승까지 거머쥐는 이변을 일으킨다. 그 중심에는 후반의 사나이로 불리던 '남형'과 육상천재 '신입'이 있었다. 바로 남승룡과 손기정이었다.
 
순천의 부잣집 장남이었던 남승룡과 가난한 잡화집 막내아들이었던 손기정은, 가정 형편 때문에 손기정이 늦게 입학면서 선임과 신예되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같은 동갑내기라는 이유로 금세 가까워졌다. 손기정은 남승룡을 깍듯하게 선배로 모셨다고 한다.
 
손기정의 성격이 불이라면, 남승룡은 우직했다. 손기정은 조선 학교와 일본 학교가 맞붙는 여자농구 경기를 응원하러갔다가 편파적으로 경기를 운영하는 일본인 관계자와 대판 싸우고 정학조치를 받은 일이 있을 만큼 화끈한 성격이었다. 남승룡은 방학이 되어 서울에서 고향인 순천까지 훈련삼아 무박 2일 동안 37시간 34분 걸려서 쉬지 않고 걸어 내려갔다는 놀라운 일화가 전한다.
 
두 사람은 사적으로는 절친했지만 육상에 있어서는 라이벌이었다. 두 사람은 각종 육상대회에서 앞서거니 뒤서거니 1등을 주고받았다. 이전까지 남승룡이 조선 육상의 간판기대주였다면 손기정이 새로운 태양으로 등장하며 라이벌로 떠오른 것.
 
4년 뒤, 1936년. 남승룡과 손기정은 일본 대표팀 올림픽 선발전에서 나란히 1, 2등을 차지하며 1936년 베를린 올림픽에 출전하게 된다. 비록 식민지 국민이지만 두 사람은 정정당당하게 실력으로 올림픽 마라톤 출전권을 획득한 것. 그런데 두 사람은 현지에서 황당한 상황에 직면한다. 일본 측은 원래 3명까지 출전가능한 선수단에 선발전 4등까지 데려오며 "이것은 일본의 국책이니, 조선인 두 사람 중 한 명은 빠져라"고 요구했다. 일본인이 메달을 딸 확률을 높이기 위한 꼼수였다.
 
남승룡과 손기정은 고민하다가 결국 서로를 위하여 자신이 빠지겠다고 나섰다. 이렇게 되자 당황한 것은 오히려 일본 측이었다. 일본으로서는 선발전 1, 2등을 다 빼고 올림픽을 치른다는 것도 큰 부담이었다. 난감해하던 일본 코치진은 올림픽 개막식을 불과 2주 앞두고 현지에서 다시 선발전을 치르겠다고 선언했다.
 
조선인 2명, 일본인 2명, 총 4명 중에서 3명의 최종 출전 선수를 뽑는 마지막 경쟁이 시작됐다. 손기정과 남승룡이 이번에도 나란히 1, 2등을 차지하며 실력으로 두 사람 모두 올림픽 출전권을 지켜냈다. 일본은 한 선수가 지쳐서 완주도 하기 전에 기권하고, 다른 한 선수는 지름길을 이용하는 반칙을 저지르고도 손기정과 남승룡을 넘지못했다.
 
"1등보다 일장기 가릴 꽃이 부러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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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6년 8월 9일. 드디어 올림픽의 꽃 마라톤 경기가 열리는 날이 돌아왔다. 당시 메인 스타디움은 12만 명의 사람들로 꽉 찼다. 당시 많은 관중들이 가장 주목했던 것은 전 대회 올림픽 금메달리스트이자 강력한 우승 후보인 아르헨티나의 후안 카를로스 자바라라는 선수였다. 자바라는 이미 1년 전부터 베를린에 와서 훈련을 해왔고, 아르헨티나 정부 차원에서 최고급 장비와 컨디션 관리까지 세심하게 지원받았다.
 
반면 우리 선수들은 천으로 제작한 일본식 버선에 얇은 고무로 바닥을 덧대서 충격 흡수도, 발 보호도 안되는 열악한 운동화를 신고 올림픽 무대에 나서야 했다. 컨디션 관리 역시 스스로 각자 알아서 해야 했다.
 
오후 3시, 마침내 경기가 시작됐다. 출발 신호가 떨어지고 56명의 선수들이 일제히 달려 나갔다. 강력한 우승후보 자바라는 초반부터 속전속결 작전으로 치고나가며 다른 선수들과 거리를 벌려 일찍 승부를 끝내겠다는 전략을 들고 나왔다.
 
손기정은 본인이 선두그룹에서 경기를 이끄는 스타일인데, 자바라가 너무 빠른 것을 보고 당황했다. 손기정은 이를 악물고 자바라에게 맞춰 속도를 높이는데 옆에서 누군가 "슬로우! 슬로우!"라고 외치며 손기정을 만류했다. 그는 영국 선수인 하퍼였다. 그가 왜 손기정한테 천천히 가라고 했는지, 그 의도가 견제였는지 걱정이었는지 이유는 정확히 알려지지 않았다. 하지만 당시 손기정이 무리하게 달리고 있었다는 건 확실했으며 결과적으로 하퍼의 외침은 손기정에게는 귀중한 조언이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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